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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의 회로도’에서 되찾는 상생과 치유' 

  

                                                                                       김성호(미술평론가) 

 

 

I. 개요
배수영의 작업은 그간 9회의 개인전을 통해서 설치미술, 공간디자인, 공공미술, 환경미술, 야외미술, 생태미술 등의 장르적 속성을 드러내며 관객의 참여와 상호 작용을 도모해 왔다. 작가/작품/관객의 만남처럼 그녀의 작업이 담고 있는 주제 의식에는 늘 관계의 항들이 맞물려 있다. 논의의 한계가 있겠으나, 그녀의 개인전에서 가시화된 주제 의식을 검토하면, ‘현실/이상, 현실/환영의 조우(遭遇)’(2006, 2008), ‘생태미술/공공미술, 자연미술/문화행동주의의 만남’(2012), ‘개인/사회, 실존/본질의 관계’(2014, 2015), ‘전통/현대, 주체/타자의 소통’(2017), ‘자연/문명, 치유/상생의 회로(回路)’(2018)와 같은 것들로 대략 정리될 수 있겠다. 특히, 올해 전시는 작가 배수영이 천착하는 작업의 몇 가지 경향들 중에서 ‘폐(廢)회로 기판’을 활용한 리사이클링 아트 담론에 기초한 미디어아트’에 집중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II. 회로 기판과 관계 회복의 네트워크
회로 기판은 배수영이 리사이클링 아트에 천착했던 작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폐(廢)재료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소재 중 하나이다. 주지하듯이 회로 기판(回路基板, circuit board)은 ‘에폭시 수지나 페놀 수지 등 절연 재료로 된 평평한 조각 위에 전기 부품을 부착하여 접속이 가능하도록 만든 회로’를 지칭한다. 즉 ‘전자제품의 부품들을 서로 연결할 때 보드에 회로를 만들어 전기를 통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 가닥의 전선을 사용하지 않고 효율적인 접속점을 만들기 위해서 구축한 간이 플랫폼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작가 배수영이 이 회로 기판을 사용하게 된 까닭은 “현대 사회 속에서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소모되는 산업 폐기물을 오브제로 선택하여 존재 가치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회로의 유기적인 연결과 빛의 순환, 그리고 자연을 나타내는 조합을 통해 작품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즉 버려진 컴퓨터 회로 부품처럼 쓸모를 다하고 버려진 문명의 부산물이 야기하는 환경 오염의 문제들로부터 그녀는 오히려 자연의 본원적 존재에 대한 회복의 메시지를 발견하고 이러한 폐재료들을 리사이클링 아트로 부활시켜 자신의 관계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여기서 회복할 ‘관계’란 무엇인가? 배수영은 그것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 속의 모든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정의한다. 즉 인간 주체가 맺는 모든 관계를 상정하는 것이다. 때로 그것은 ‘나’로 대표되는 개인으로서의 인간 주체가 대면한 타자(들)가 될 수 있고, 때로 그것은 ‘우리’라는 말로 대표되는 사회적 인간이 대면한 동물, 자연, 환경, 문명 등이 될 수 있겠다. 이러한 까닭에 그녀의 작품은 ‘인간 주체를 둘러싸고 있는 훼손된 모든 관계’를 회복하려는 치유와 상생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업이 된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회로 기판은 ‘인간 주체가 대면한 모든 관계’에 대한 강력한 메타포(metaphor)로 자리할 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의 회복을 열망하는 ‘상생과 치유의 메시지’를 함유한다.
그녀가 작품의 패널 위에 부조의 형식으로 올려붙인 다양한 크기의 실제의 ‘오브제 회로 기판’은 사과, 나비, 새, 나무, 태양과 같은 자연의 형상을 한 화려한 색의 ‘이미지 회로 기판’ 위에 자리하면서 실재/허구/이미지, 인간/자연/문명과 같은 서로의 관계망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준다. 보드 위에 회로는 시각적으로 중간중간 끊어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 보드 뒷면에는 전기 소자를 연결한 동박(銅箔)의 패턴 뒤에 많은 선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복잡한 전기회로는 어느 하나라도 단절되면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전기회로 기판의 존재 조건은 절연체의 회로 기판 위에서 각 소자를 연결하여 전기를 매개함으로써 연결체, 접속기(接續器)의 기능을 다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속기로서의 역할은 마치 삶 속에서 일시적으로 단절된 사회적 인간 주체로서의 다양한 관계를 회복하려는 우리의 노력들과 닮아 있다. 우리는 가히 그것을 상생과 치유의 메시지라 부를 만하다. 


 
III. 회로도와 순환의 생태미학

배수영의 작업에서 관계의 네트워크를 회복하고 있는 실제 주인공이 눈에 보이지 않는 뒷면의 회로 기판인 것을 상기할 때, 그녀의 작업의 메시지는 실상 보이지 않는 뒷면에서 작동한다. 마치 질서 정연한 미로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끊어져 있는 회로 기판의 앞면과 달리, 보이지 않는 뒷면에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모두가 연결된 하나의 회로도(回路圖)인 셈이다. 따라서 그녀의 작업에서 관계 회복을 위한 네트워킹을 가능케 하는 실제적 운동체는 우리 앞에 드러나 있지 않은 뒷면의 ‘비가시적 실체(substance Invisible)’인 셈이다.
보이지 않는 운동체의 주역, 그것은 마치 들뢰즈 철학에서 드러나는 잠세태(潛勢態, virtualité)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세상에 존재하는 실재(réalité)이다. 대개의 시간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스스로를 은폐하고 있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실재이다.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을 때는, 마치 물이 0℃ 빙점(氷點)을 만나 얼음으로 변하고, 100℃ 비등점(沸騰點)을 만나 수증기로 변하는 것처럼, 현실화(actualisation)의 운동을 통해서 세상 밖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때이다. 그 현실화에 이르기까지 잠세태는 보이지 않는 배면에서 변화를 거듭하면서 끊임없이 운동을 지속한다.
보라! 배수영의 작업에서 이러한 '현실화'는, 작품〈무술〉이나 작품 〈Butterfly〉에서처럼, 자신의 몸체를 붉은색 계열에서 점차 푸른색 계열로 또는 역방향의 변화를 지속하는 운동 속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또 다른 작품 〈Mind〉나 〈good news〉 그리고 〈아담과 이브III〉에서는 이러한 운동이 LED전구의 깜빡거림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점멸하는 전구는 도시의 ‘루미에르 축제(lumiere festival)’와 같은 시각적 효과를 선보이면서 화려한 축제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비유적으로 말해, 패널 표면 위 총천연색의 조명을 받으며 등장한 ‘화려한 여왕의 귀환’은 전적으로 패널 뒷면에 숨겨진 채 지난한 노동을 업처럼 받아들이고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의 수고스러운 노동’에 의한 것이다.
배수영의 회로 기판에 기초한 최근작들은 버려진 폐회로 기판과 같은 인공의 폐재료들을 모아 그것들이 서로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게끔 도모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순환의 생태미학을 드러내려는 주제 의식과 맞물려 있다. 마치 쓰레기와 다를 바 없는 문명의 부산물들 속에서도 화려한 예술의 생명력을 꽃피울 수 있다는 자신의 확고한 작업 의지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가로 길이 5미터에 육박하는 그녀의 올해 대작(大作)을 보자. 작품명이 〈생+생+생(재생+소생+상생〉인 것을 유념하고, 재료로 도입한 화려한 형광등이나 LED 조명이 대개 폐재료였다는 점을 상기할 때, 그녀의 작업은 리사이클링이라는 버려진 재료의 재생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치유와 상생과 미학’을 제시한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즉 배수영의 작업은 폐기로부터 재생을,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그리고 나만의 생으로부터 서로의 생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시각화했다고 볼 수 있겠다.
배수영은 화려한 조명이 일렁이는 자신의 미디어아트 속에 순환의 생태미학을 품고자 한다. 일견 불가능한 듯이 보이는 이러한 시도는 그녀가 자신의 일명 ‘회로도’를 마치 동양의 침구계(針灸系) 의학이 인체를 바라보는 경락도(經洛圖)처럼 간주하는 가운데서 기인한다. 주지하듯이, ‘경락’이란 “몸 안을 도는 근원, 즉, 몸과 정신,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기(氣)로 바라보려는 전인적 인간관에 바탕한 인체관‘이다. 즉 인간을 대우주와 연동하는 하나의 소우주로 바라보려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서구의 의학이 인체를 해부학에 대한 관심으로 바라보면서 국소해부적 치료(cure)에 집중했다면 동양의 의학이 혈맥에 대한 관심으로 전체적 치료(care)에 관심을 기울여왔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배수영의 작업은 하트의 형상으로, 나무의 형상으로, 때로는 태양의 형상으로 회로가 몇 개의 군집을 이루며 분할되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배면의 공간에서 마치 들뢰즈의 철학적 메타포인 ‘리좀(rhizome)’처럼 자신의 몸을 연장하고 서로를 몸들을 하나의 몸으로 네트워킹한다. 마치 자연의 순환의 미학을 가득 안은 대우주와 연결된 소우주의 세계처럼 말이다. 


 
IV. 간섭하는 회로도

“내가 하는 작업은 단순히 작품 속에 회로들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자연과 인간 사이에 특별한 감성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라는 배수영은 언급은 곱씹어 볼만하다. 그녀는 이러한 발언을 수렴하는 자신의 작업을 간단히 ‘인간의 관계를 위한 회로도’로 정의한다. 즉 인간을 주축으로 한 다양하고도 따뜻한 감성의 관계도를 그리려고 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녀의 작업관이 실제의 작품에 잘 드러나고 있는지 질문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음양오행의 동양 철학에 기초한 인간 관계도를 자신만의 조형예술로 가시화시키는 일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음양오양의 세계관과 더불어 실물이 파동으로 변환되고 파동이 실물로 치환되는 방식의 동양 철학 특유의 ‘서로의 간섭현상(interference)’에 관심을 기울이는 그녀의 회로도가 ‘이론적 모색’과 ‘실기의 언어’ 차원에서 유의미한 지점에 도달하길 기대한다. 어떤 면에서는 마치 회로 기판에 적용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변환 장치나 전압의 흐름을 조절하는 트랜지스터와 같은 증폭 장치들이 그녀의 작업에 있어 일정 부분 필요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차원에서 아쉽게도 이번 전시에서, 실제의 전시 공간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작품 〈생+생+생(재생+소생+상생〉에서 실현하려고 했던 양 극단 사이를 횡단하는 빛의 움직임과 같은 조형 실험이 자못 기대된다. ●
 






 

나의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자연과 인간은 버려진 컴퓨터의 회로 부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폐기물을 보며 자연스럽게 자연과 연관시켰다.  
 
그리고 폐 회로부품에서 ‘자연 보호’의 메시지를 얻었고, 회로의 구성으로부터 ‘관계’라는 것을 연상시켰다. 여기서 관계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 속에서 모든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복잡한 회로기판의 어느 한곳이 상실된다면 전체의 역할을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로기판의 구조가 우리 인간의 사회와 너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뿐 아니라, ‘자연’이라는 거대한 공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발전시켜 총체적인 탐구의 결과를 작품 안에 담아내길 원했다. 이러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소모되어 버려지는 산업폐기물을 사용하였다.
 
버려진 폐기물들은 작품으로서의 생명력을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가치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을 발생되는 다양한 인연의 모습을 감상자에게 전달한다.


                                                                                                                            - 배수영 작가노트 中 -